우리집 고양이 물루

이름 : 물루 (Mouloud)

품종 : 터키쉬 앙고라

성별 : 여아 

나이 : 4년 9개월 (추정)

성격 : 온순하고 내성적. 낯선 사람과 어린애들을 무서워함. 


몇년전 비오는 날 부모님이 데려오신 고양이.

볼 일이 있어서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길 안쪽 풀숲에서 고양이가 비명을 지르듯 울고 있어서 누가 고양이 해치는줄 알고 가봤다가 나무에 묶여 버려진걸 발견하셨다고 한다.

버려진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집에 데려오는 내내 울고 집에 와서도 한 시간은 족히 울었다. 

몇년째 이 녀석을 키우다보니 성격이 엄청나게 내성적이고 낯선 환경이나 낯선 사람을 싫어하는데, 백주대낮에 길바닥에 묶인채 버림받았으니 그 충격이 어땠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구조 다음날의 물루

우리 집에 온 다음날 찍은 사진. 대략 이 때가 6,7개월 정도. 

태어나서 한 번도 목욕을 해 본적이 없는듯 털은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수가 없고, 나중에 병원에 가서 진찰해보니 귓속은 진드기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리고 전 주인 집에서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는지 완전히 난민 고양이.

불안한 표정에, 얼굴에 살이 없어서 볼은 푹 꺼져 있었고, 목욕탕 욕조 바닥에서 물먹는 습관이 있는걸 보니 물도 제대로 안줬던것 같다.

우리 집에서 몇 달 잘 먹이고 병원에 갔을때도 의사가 고양이 너무 말랐다고 했을 정도니까 처음 왔을때는 거의 영양실조 상태에 근접했을듯.

원래 가족들 생각은 일단 데려와서 돌봐주다가 좋은 집에 입양보내자는 것이었다.

이 녀석이 왔을때 우리 집에는 8살짜리 시츄가 한 마리 있었고, 무엇보다 엄마의 고양이 알레르기가 좀 심해서 우리 집에서 입양하는건 당시로선 무리였다. 

 

우리집에 온지 한달반된 물루

우리 집에 온지 한달 반쯤 됐을때.

온지 얼마 안됐는데도 벌써 좀 살이 오르고, 때깔도 좋아지고, 정서적으로도 안정됐다.

눈에 촛점이 생기고 똘망똘망해짐. 

입양 가정이 두 군데 정도 나타났는데 사정을 들어보니 한번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고, 고양이 습성에 대한 기초 지식도 없는데다 무엇보다 키울 여건이 전혀 안되는 집들이었다.

그렇게 입양보내는 건 무산되고, 계속 옆에 두고 키우다보니 정이 들어서 나중엔 가족들도 보낼 생각을 안하고......

결국은 임시보호가 입양이 되었다. 

집에 온지 두달 정도 됐을때 발정기가 와서 중성화 수술을 시키고, 귀 진드기도 치료해줬다.

귀 진드기때문에 귓속 피부가 많이 상할 정도로 심했는데 딱 한번 치료하니 다 없어졌고, 그 후에 귀 청소도 해줄겸 두 번 정도 더 데려가서 진찰받았는데 깔끔하게 회복됐다. 


집사에게 달려오는 물루

이 사진은 볼때마다 '조스'의 배경음악이 떠오르는데, 실은 집사를 보고 반갑다고 달려오는 모습임. ㅋ 

이 녀석을 키우면서 관찰해보니 전 주인 집에서 어떻게 살았는지 대충 유추가 되는데, 아마도 맞벌이 가정에 애들도 학생이라 가족들이 하루종일 집을 비웠던것 같다. 

가족들이 다들 바쁘니 고양이 식사를 제대로 챙겨주지 않았을테고, 혼자 남겨진 녀석은 하루종일 먹을만한 것을 찾아서 집안을 배회하다가 목이 마르면 목욕탕 바닥에 고인 물을 핥아먹곤 했던것 같다. 

순종이니 브리더의 집에서 태어났을텐데, 아마 지인이 집에 왔다가 새끼 고양이 예쁘다고 장난감 사는 기분으로 덥석 집어가서 얼떨결에 입양됐겠지. 

고양이 입장에서는 엄마하고 떨어지고 살던 환경이 전부 바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입양간 집에서는 이 녀석을 제대로 돌봐주질 못했으니. 

그래놓고 좀 커서 발정기가 오니까 귀찮다고 나무에 묶어서 내다버림...전 주인 대단하다. 

그래서 낯선 사람 눈에 띄면 낯선 곳으로 끌려간다는 공포심이 생긴것 같다. 

어린애들을 싫어하는 것도 전 주인집에서의 경험이 이유인듯.

집에 낯선 사람이 오면 식음을 전폐하고 하루종일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원래 고양이는 집 안에서만 키우는 동물이지만, 가끔은 바깥 바람을 쏘여주자고 캐리어에 담아서 데리고 나간적이 있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길래, 그 이후에는 병원 갈 때를 빼면 절대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는다. 

 

강아지 팬지와 고양이 물루

팬지와 물루의 사이좋은 한 때. 

(팬지는 2008년 12월에 12년 9개월을 일기로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집에 새로운 동물이 들어오면 기존에 있던 녀석들이 샘부리고 못살게 군다던데, 우리 팬지느 물루가 왔을때 할아버지가 다 된 나이이기도 하고 집에서 곱게만 자란 강아지라 그런지 어린 고양이를 잘 돌봐주고, 사이좋게 지냈었다. 

 

어리광부리는 물루

어리광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우리집에서 한 4년 넘게 살더니 이제 완전히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해 하는것 같다. 

신기하게도 이 녀석이 처음 올때만 해도 꽤 심했던 엄마의 고양이 알레르기가 어느 순간 없어졌다. 

우리 가족들이 건강관리에 유난스러운 편이긴 하지만 이건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예전에 고양이를 키울때도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했고, 오래된 지병 수준이었는데. 

이 녀석한테 정이 들어서 우리집에 살수있게 고양이 알레르기를 없애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그게 통했나.....

몇년간 비타민 꾸준히 드시고, 매일 운동해서 면역력이 올라간 게 실질적인 이유겠지만. 


물루의 비포 애프터

마지막으로 비교체험 극과 극. 

물루라는 이름은 장 그르니에의 '고양이 물루(Le chat Mouloud)'에서 따 온 이름이다. 


[2009-09-24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