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화가 있다는 건 알았는데 왠지 손이 안 가서 계속 미루고 있다가 워킹 데드와 유사한 좀비물이라길래 한 번 봤다.
와.....영화 엄청 암울하네.
대니 보일 영화는 처음인데, 이 사람 왜 유명한지 이해가 간다.
전체적인 흐름과 호흡, 완급 조절이 정말 끝내주고, 무엇보다 영화에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
미국 영화였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숨 쉴 틈도 없이 몰아붙이는 스타일로 갔을텐데, 역시 뭔가 다르긴 다르네.
영화 시작하자마자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분노 바이러스'가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경로로 퍼져나가는지를 상당히 스피디하고 충격적으로 보여준 다음, 바이러스 확산 28일 후 교통사고로 혼수 상태였던 화물 배달원 짐이 병원에서 혼자 깨어나는 장면으로 이동한다.
주인공이 병원에서 나와 하루종일 텅 빈 런던 시내를 배회하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거리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CG는 아닌데 어떻게 찍은건지 좀 신기했음.
이른 새벽에 차량 통제하고 찍었다고는 하지만 저기가 얼마나 붐비는 곳인데...
걸작과 범작의 차이는 긴장감의 창출에 있다.
그냥 텅 빈 거리를 계속 헤매는 것뿐인데, 보는 사람은 점점 초조하고 불안해진다.
물론 어느 정도 영화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원래 우중충한 날씨로 유명한 런던이긴 하지만 영화의 색조도 엄청나게 우중충해서 암울한 내용과 딱 맞아 떨어진다.
주인공이 좀비들에게 쫓기다가 만나게 된 생존자 셀레나.
주인공이 비쩍 마르고 묘한 인상의 소유자인데다 우유부단해 보이기까지 해서 처음엔 꽤 비호감인데, 그래서 극강의 생존력과 빠른 판단력, 과감한 결단성을 갖춘 셀레나라는 캐릭터가 등장했을때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남자 생존자가 좀비에게 물리자 항상 가지고 다니던 글루커 나이프를 가차없이 내리쳐서 끝내버리는 장면은 잔혹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맨체스터 인근 군부대로 모이면 안전을 보장한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프랭크와 해나 부녀와 함께 맨체스터로 길을 떠나는 짐과 셀레나.
지하 차도에서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던 중에 좀비떼가 몰려오는 장면은 짧지만 스릴 만땅이었다.
구불구불한 지하차도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의 그림자가 벽에 얼비치면서 숫자와 거리감의 착시를 일으키는데, 짧은 장면이지만 공포감을 급상승시키는 명장면.
특히 이 영화에서 좀비들의 스피드와 비주얼이 주는 공포감은 정말이지 엄청나다.
(속도감을 위해서 육상선수를 좀비역 엑스트라로 썼다고 함)
이렇게 쫄깃한 장면 직후에는 텅빈 대형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장면도 있고, 나름대로 희망을 가지고 맨체스터행 드라이브를 즐기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천신만고 끝에 맨체스터에 도착해보니 도시는 불바다에 군부대는 아무데도 없고....
프랭크는 피 한방울 때문에 어이없이 감염되어 뒤늦게 나타난 군인들에게 총살당한다.
남은 일행은 군인들의 아지트로 옮겨지고, 이제 한숨 돌리나 싶을때 다시 반전.
좀비들에게서 아지트를 지킬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 위안부를 불러 모을 목적으로 방송을 했다는 진실이 밝혀지고, 여자들을 데리고 도망치려고 했던 짐은 군인들에게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극한 상황에서, 소년 좀비를 죽이고 마음의 가책에 시달리던 마음 여린 주인공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다.
항상 그렇지만 귀신보다 무서운 건 사람이고, 좀비보다 무서운 것도 사람이다.
이 영화의 주제도 결국 그쪽으로 흘러가는것 같다.
이 영화의 결말은 4가지라고 한다.
내가 본 버전은 생존자 3명이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대형 플래카드 같은걸 만들어 놓고, 그 위를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는 결말이었다.
이게 유일하게 희망적인 결말이고, 나머지는 죄다 암울한 내용이라고.
그 중 한 가지는 결국 짐이 죽고, 세계 곳곳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되는 결말이라던가.
잘 만든 영화이긴 한데 전체적으로 너무 어둡고 암울해서 다시 보고 싶지는 않다.
[2011-02-06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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