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관성대로 항상 똑같이 굴러가는 일상에 약간의 변화를 주는 터닝 포인트가 생기는것 같다.
내 경우는 그게 입원이었던것 같고, 그래서 이런저런 골치아픈 일이 다 지나가고난 다음부터 각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에 점점 무식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걱정이었는데, 다시 책을 읽으니 무식함이 좀 치유되는것 같다는 생각이........들기는 개뿔, 책은 명작이지만 내 무식함 전선엔 전혀 이상없음.
최근에 읽고있는 책들.
1. 세계를 뒤흔든 열흘 (Ten Days That Shook The World) - 존 리드
2017년에 100주년을 맞은 러시아 10월 혁명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한 저자의 생생한 기록이다.
병원에서 읽으려고 샀는데, 병원 스케줄에 휩쓸리다보면 뭘 읽을 시간도 없고, 일단 책 자체가 이해하기 좀 빡센 관계로 3분의 1도 못읽고 퇴원했다. ㅋ
45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라 금방 읽을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복잡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 근대사의 가장 크리티컬한 이벤트를 그린 책인만큼, 러시아 근대사와 정치 사회 체제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어야 이해가 가능하다는 장벽이 있다.
뒤늦은 산업화 추진을 위한 농노제 폐지와 그 여파.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과 1차 러시아 혁명.
1914년 1차 세계대전의 정치적 배경과 각국의 이해 관계.
제정을 무너뜨린 1917년 2월 혁명.
자본가들이 조종하는 임시 정부의 무능력.
전쟁을 계속하고 혁명을 종식시키려는 자본가들과, 전쟁으로 고통받는 민중들의 대립.
대략 이 정도를 알아두면 민중들의 요구를 가장 정확히 대변한 볼셰비키가 다수파가 되고, 결국 10월 혁명과 그 후에 벌어진 적백 전쟁에서 승리하게되는 인과 관계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더 거슬러 올라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이후 전쟁 사후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러시아 귀족 사회에 유입된 프랑스 혁명 사상이 어떻게 데카브리스트 혁명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아두면 좋지만, 시간이 없거나 귀찮다면 패스해도 별 지장은 없다.
미국인이 쓰긴 했지만, 대혼돈의 시기의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책답게, 온갖 다양한 정치 기구와 파벌, 거기에 소속된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파벌들의 정치적 포지션이 어느쪽인지 대략적으로 감을 잡아놓지 않으면, 각각의 인물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핵심을 놓칠 위험성이 있다.
사실 전달에 충실하려는 목적에서 당시에 발표된 연설문, 결의안, 포고문 등등이 주석으로 첨부되어 있는데, 엄청난 만연체에 길이의 압박도 대단해서, 본문하고 이걸 같이 읽으려면 이것 또한 환장이다.
그래서 일단 우격다짐으로 책을 한 번 다 읽은 다음에, 주석을 전부 숙지하고 두번째로 읽고 있는 중.
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깨달음을 얻게된다는 조상님들의 말씀은 역시 새겨들을 가치가 있다.
초창기의 의도는 순수했지만 결과적으로 형태만 다른 전제 정치로 변질되면서 온 세상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실패한 실험.
자기들끼리 조용히 실험하다가 끝날것이지, 그 똥을 전 지구적으로 뿌려대면서 21세기인 지금까지 그 민폐를 (특히 우리나라에) 끼친 사건이라는게 10월 혁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쨌든 이 책의 제목처럼 세계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을 가장 생생하고 정확하게 묘사한 저서이니만큼 한번 읽어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2. 파운데이션 전집 (Foundation) - 아이작 아시모프
전자책 반값 대여 이벤트때 잽싸게 구매한 전집.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들을 연결하는 세계관을 확립한 SF계의 명작이라길래 일단 질러놓긴 했지만,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사실 별 기대 안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내용인가 싶어서 일단 1권을 열어봤는데, 이건 무슨 프링글스도 아니고..
미친듯이 재미있어서 광속으로 1권을 해치우고, 현재 2권을 붙잡고 있다.
전집은 전부 연작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1~3권 : 50년대 초반에 출판된 파운데이션 트릴로지.
4~5권 : 파운데이션 3부작으로부터 30년 뒤인 80년대에 출판된 파운데이션 세계관의 확장판.
6~7권 : 파운데이션 설립자 해리 셀던이 주인공인 프리퀄.
왕좌의 게임이 판타지의 탈을 쓴 중세 정치물이라면, 파운데이션은 SF로 포장된 역사 정치물이다.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인류의 기원이 지구라는 것조차 잊혀진 먼 미래의 은하 제국.
소설의 구성은 생각보다 단순하고, 1~3권에서 각 챕터는 수십년의 시간차를 두고 특정한 짧은 시점에 벌어진 사건들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전지적 작가 시점의 서술형이 아니라, 몇 명의 인물들의 대화로 대부분의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취향에 따라서는 지루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 함축된 내용의 스케일은 정말 어마어마하고, 역사, 정치, 종교, 경제, 심리학 등등 작가가 풀어내는 다양한 분야의 철학과 통찰력은 정말 놀라울 뿐이다.
아시모프가 1권 분량을 잡지에 연재한게 20대 초반이고, 기획은 10대때부터 했다니 이 사람 천재 맞는듯.
노벨상 수상 작가인 숄로호프도 고요한 돈강 1권을 출판한게 23살이라던데, 러시아인들한테는 무슨 대문호의 유전자가 있나...
은하 제국의 쇠퇴와 완전한 붕괴, 새로운 제국의 씨앗이 지배권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수단이 종교에서 금권으로 변화하는건, 로마 제국의 붕괴와 바티칸을 중심으로 하는 중세 기독교의 지배, 그리고 대항해 시대에서 이어지는 식민지 시대를 연상시킨다.
톨킨이 판타지 세계관의 창시자라면, 아시모프는 SF 세계관의 기본 틀을 만들면서 이후에 등장한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그런 의미에서 '파운데이션'(토대/기반)이라는 제목은 상당히 적절하다.
이건 주로 밤에 읽게되는데, 정줄놓고 읽다보면 잘 시간을 넘겨버리기 때문에 요즘 이 책때문에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책읽기도 꼬리에 꼬리를 물어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다보니 다음에 읽을 책은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으로 정해졌고, '파운데이션' 다음으로는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를 읽을 생각이었는데, 며칠전에 또 이벤트에 홀랑 넘어가서, 분량이 엄청난 '대망' 전집을 지르고 말았다.
[2017-03-08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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